우리말 논문쓰기의 원칙

이 광근

1997년 1월 3일

(PDF,Postscript,DVI)

배경

나는 우리의 공부를 우리의 언어로 쉽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학술활동이라고 여기고 있고, 그 실행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조상의 기라성같은 공부의 내용이 외국어(중국어)로 쓰인 까닭에 우리에게 쉽게 전달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해진 ``역사''를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1].

귀국후 학생들의 글을 지도해 보면서 우리글의 원칙에 대해 학생들 하나하나를 설득하는 과정이 내겐 지루한 반복이었다. 매년 새로 접하게 되는 학생들에게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번잡을 이 글로 줄여 볼 생각이다.

나는 이해한다. 현재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가 체득한 문제를 우리의 언어로 풀어가는 데 주목하는 것이, 인터넷을 타고 흘러온 남의 이야기들을 주워담는 데 주목하는 것보다 몇 배 어려운 것이리라. 기지촌 방식에[3] 익숙한 우리로써는 자신이 체험한 문제를 자신의 언어로써 풀어나가는 것이, 선진 외국인 과학자의 세련된 영어를 해독하는 것 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이 기지촌의 관성을 뿌리칠 것인가.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비슷한 성격의 연구과제들을 전 세계적으로 대량생산하고 있고, 어디에선가 해결한 문제는 실시간으로 전 세계 모든 개개인의 공부내용을 바꾸어 놓는다. 그 과정에서 이질적인 아이디어와 해답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데, 거기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각 팀의 가장 독특한 공부이고, 그 공부의 독특함은 우리 주변의 문제들을 자각적으로 풀어가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2]. 이 자각이 우리가 세심하게 천착해가는 우리글을 통해서 보다 빨리 올것으로 믿는다.

원칙

  1. 전문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한다.
  2. 그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는 우리말을 찾는다.
  3. 이때, 지레 ``겁먹게 하는'' 용어(불필요한 한문)를 피하고, 될 수 있으면 쉬운말을 찾는다.
  4. 이때, 전문용어 하나에 한글용어 하나가 일대일 대응일 필요가 없이,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풀어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의미의 명확한 전개.
  5. 전문용어는 해당 우리말 다음에 괄호안에 항상 따라 붙인다.
  6. 도저히 우리말을 찾을 수 없을 땐, 소리나는대로 쓰고 괄호안에 따라붙인다.
  7. 기존의 용어사전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보다 좋은 우리말을 찾았으면, 그렇게 쓴다. 우리 분야의 전문가인 우리가 주도한다.


[1]
김 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통나무. 1989
[2]
``우리는 국가 경영전략이 있는가 II (세계화 정책의 주변이야기),'' [도올고신], 제 9 신. pp.1-3. 1996
[3]
김 영민.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 민음사,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