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K.Rowling (Harry Porter작가)는 Robert Galbraith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썼다. "자유를 느끼는 경험이었다."
Agatha Christie는 66편의 추리소설을 본명으로 썼지만, 6편의 로맨스 소설을 Mary Westmacott이라는 이름으로 발표. 그녀의 유명세가 가지는 무게를 떨치고 쓴 소설. John Banvill은 맨부커상을 2005년에 받았으나 Benjamin Black이름으로 범죄소설 발표하고.
Julian Barnes도 맨부커상 받았고 Dan Kavanagh이름으로 스릴러를 발표. 명성의 사슬을 벗고 쓰는 자유가 필요했던 것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장르를 해보는 기회를 가져보고 싶었던 것.
Robert Towne은 전설적인 할리우드 작가. Bonnie and Clyde, The Godfather 작품. 그가 썼지만 다른 이름으로. Towne은 작업하면서 다른 이름으로 하면 자유롭게 빨리 할 수 있었다. 스크립트를 자신의 이름으로 하면 "작가의 담벼락"을 겪었다. 다시쓰고 다시쓰고 끝까지 만족못하겠고 결과가 없어지고.
때때로 자신의 에고를 감출필요가 있다. 노바디가 되면 자유로움이 생긴다. 다른 이름으로 일하면 다른 사람의 기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자신에게서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완벽하게/achieve the perfect work-life balance/
완벽하게 일과 삶을 균형잡고 싶다? 해답은 간단하다. 일을 하지 마라.
위대한 화가, 시인, 무용가, 예술가, 사업가, 소설가등 창의적인 사람들은 삶의 스타일을 정하고 그리고 그 스타일 안에서 어떻게 먹고살기위해 뭘 해야 할지를 정한다. 진정어리고 만족스런 삶을 선택한다, 사회가 원하는 것을 만족하려고 하지않고. 그리고 일년 365일 일주 7일 하루 24시간 내내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일과 삶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 바로 그들의 일이었다.
균형이 없었다. 일과 삶이 하나로 묶여있기 때문.
삶과 일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연결되지 않는 존재가 될 운명인거다. 일보다는 휴가를 가고 싶다? 그러면 삶을 바꿀 필요가있다. 지금 당장.
/네 말을 못잊게 만들라/make what you say unforgettable/
Giles Brindley 유명새를 탄 생리학자. 나중에 그의 생물공학 연구로 작위를 수여받는다. 사람들은 그의 강연을 못 잊는다. 1983년 라스베가스에서 있었던 미국비뇨기 연합회의에서 있었던. 뉴욕타임지는 두번째 섹스 혁명이라고 보도. 의료 컨벤션에서 저녁직전에 정장을 하고 앉아있는 의사들 앞에서 하는 강연치고 나쁘지 않은 토픽.
Brindley가 남성 발기문제의 한 해법을 이야기하는 강연. 화학물질을 삽입하면 발기를 일으킨다는 아이디어. 1983당시로는 쑥쓰러운 토픽.
적절한 동물 모델이 없어서 그는 스스로에게 실험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방법이 발기불능환자에게 효과적일 수 있음을 설명했다. 몇시간이 발기가 유지되는. 그런데 그는 사람들이 다른 에로틱한 충동으로 발기됬던 것을 사진찍은 것으로 의문을 제기할 것을 걱정. 가장 설득력있게 전달하고 싶어서, 연설 직전에 화학물을 자신의 성기에 주사했다. 그러고는 연설중에 청중들에게 이렇게 큰 청중앞에서 연설하는게 에로틱한 충동은 아니지 않냐고 말하고는 바지를 내려서 자신의 발기된 성기를 보여주었다. 완전히 조용해젔고 모두가 숨을 죽였다. Brindley가 말했다 "청중 여러분이 발기의 정도를 확인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그러고는 놀라자빠진 청중의 맨 앞줄을 누비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두 손을 들고 소리지르기 시작하자, 그는 강연대로 돌아가서 강연을 마무리했고. 청중들은 벙어리가 되서 흩어지고.
Brindley의 강연의 영향력은 남성 건강의 코스를 영원히 바꿨다. 더 중요하게는 의료계에 임팩트를 만드는 창의적인 방법을 발견했던 것이다.
오리지널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잊혀질 수 없는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전달한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기억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은 심장으로부터 말하고 쓰는 사람들이다. 그냥 그대로 본연의 그들이 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용기를 불러내서 새로운 지평으로 지도없이 나아가라.
/실험.을. 하지말고 실험.이. 되라/don't experiment, be an experiment/
비틀즈는 당대 제일 영향력있는 문화아이콘이 되었는데 방법은:
끊임없는 실험. 새로운 음악작법을 찾았다, 꾸준히 새로운 음악영토를
개척하면서 각 앨범마다.
어떻게 녹음스튜디오에서 작업했는지 이야기들어보면 마치 소리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고있었다. 새로 알게된것을 음악에 삽입하면서 끊임없이
그들의 음악을 재창조했다.
폴 매카트니 왈 "늘 이렇게 이야기하는 식이었다. '해봐, 해보고
말하자. 그지같으면 버리면 그만이고, 혹시 좋게 들릴 수 있지않겠어'
우리는 늘 앞으로 앞으로 밀고나갔다: 더 크게, 더 더, 더 길게 더, 더
다르게" 그들은 여러 장르를 섞으면서 실험했다.
비틀즈는 락밴드중 처음으로 피드백을 썼고(I Fee Fine), 싯타르(sitar)와 인도음악을(Revolver), 현악기(Yesterday)를 사용했다. 그들은 기술도 사랑했다: 인공적인 double-tracking을 했고, 어쿠스틱 악기들의 close mixing, 샘플링, direct injection, 테잎머신을 싱크로했고, 테잎을 거꾸로 틀기도 했다. 이런 모든 실험들이 그들 음악을 여러겹으로 두껩게 만들고 차원을 높여갔다.
레논과 멕카트니는 끊임없이 서로의 음악을 개선하는 방법들을 주무르며 놀았다. 때때로 각자 지은 설익은 곡을 합쳐서 완성된 곡을 만들기도 했다(A Day in the Life). 레논왈 그렇게 대놓고 서로 곡을 쓰고 논쟁하고 섞고 들이밀고. 그러면서 그들은 온갖 종류의 실험적인 아이디어들을 서로의 음악에 자유롭게 해갔다. 그들 테잎을 스튜디오에서 잘 들어보면 그들은 항상 농담, 말도안되는 가사, 이상한 소리들을 음악에 삽입한걸 알게된다.
실험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열쇠는 말도안되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허용하는 것이다.
이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멋진데 우수워보이는 아이디어는 아예 거부하게 배운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배운자. 이런 충동을 좀 느슨하게 만들려고 애써라, 그리고 어릴때 가졌던 창의적인 자유로 돌아가라. 실험해보고 실패하는게 더 재미있다, 안전하게 지내면서 성공하는 것 보다.
우리모두는 문제들에 맞닿뜨려있다. 실험적인 방식이 고유의 오리지날한 해법을 가져올 수 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무실, 스튜디오, 연구실등을 실험하는 장소로 만든다. 창의적인 조직은 끊임없이 실험해서 생각을 신선하게 유지한다.
일들이 너무 스무드하게 진행된다? 실험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는 징조다.
/기회를 더이상 놓치지마라/stop missing opportunities/
몇개의 기회를 놓쳐봤는가? 내 주변에 수없이 많이 봤다. 기회가 주어졌는데 잡지 못한 친구들을. 그런건 너무 흔하다. 다른 기회가 올거라고 다른 기회 또 다른 기회들이. 그런데 오지 않는다. 그 친구들은 한 번 기회가 왔었고 잡지못했다. 돌아보고는 가슴쓰리게 후회한다. 기회는 드믈고 금방 사라진다.
할리우드의 위대한 배우이며 감독인 Warren Beatty. 14번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랐고, 한번 최우수감독상 수상. 1964년에 자신이 주연이 되는 영화아이디어를 냈다. What's New Pussycat? 바람둥이 남자에 대한 코메디. 여친에게 충실하려고 노력하는데 자신에게 빠진 다른 여자들에게 끊임없이 유혹당하는. 제작자를 구했고 각본을 쓰는 데, 재미있는 농담을 넣어야겠는데. 뉴욕시의 Bitter End라는 코메디 클럽에서 개그를 하는 젋은 코메디언을 만난다. Woody Allen. 각본에 몇개의 농담을 더해주면 주당 3만불 주겠다고 제안. Allen은 4만불 달라고. No라고 답하고. Allen은 그럼 3만불에 하겠는데 자신이 작은 까메오로 출연할 수 있게 해달라고. 동의하고.
Allen이 작업하기 시작하는데, 각본이 준비되면 준비될 수록 Allen의 역할이 커지고 Beatty의 역할을 점점 작어져갔다. 끝내는 Beatty가 화가나서 프로젝트에서 손떼고. 그 영화는 성공하고. 이때 부터 Allen은 할리우드의 블루칩이 되고 그가 하는 작업은 그가 모든 걸 콘트롤할 수 있게만들었고. 그는 그의 기회를 최대한 욹어먹었다. 다른 기회는 영영 없었을 수 있다. 조그만 기회였고 최대로 만들었다.
많은 예술가를 알고있다. 갤러리로부터 단독 전시를 제안받고는 사소한 계약상의 욕심으로 전시가 무산되는. 작가들도 출판사들에게 출판을 제의받고 선인세를 조금 더 받겠다고 하다가 출판이 무산되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라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보라. 어떻게
해내야 하는 지를 모르더라도 우선 잡아라. 나중에 일이 안되면 그때 어떻게 할지 고민해라. 기회가 일어서는 경우를 만나면 너도 일어나 잡아라.
/더자주 스스로 모순이 되라/contradict yourself more often/
유명한 심리학자인 Mihaly Csikszentmihalyi 가 창의적인 사람들은 "모순되는 양 극단을 가지고 있다; 일개 개인이기 보다는 각자가 여럿인"
영국 화가 Francis Bacon이 이 경우의 끝판왕. 상충하는 성격이 위대한 예술을 만드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Bacon은 20세기 회화의 거인이다. 야망스러움과 부드러움으로 20세기의 전전긍긍함과 미친듯한 에너지를 포착해내는 그림들. 그의 폭력스런 그림들은 칭송받기도 하고 그 만큼 또 미움받고있기도 하다.
Bacon의 그림은 결정적이지 않다. 초상화들인데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추상적인 부분과 구체적인 부분이 이리저리 요동친다. 제목들도 대게 "탐구(studies)"라고 한다. Bacon도 그림이 끝난건지 아닌지 결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내향과 외향으로 사람 성격을 구분하는데, 창의적인 사람들은 이 두개를 모두 가지고 있다. 외향적이기도 하고 내성적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모으는 중앙에 서기도 하고, 변방에서 바라만 보기도 하고.
Bacon은 런던 소호의 프라이빗 술집인 Colony Room에 자주 온다. 사람들의 중심에서 열심히 교재하고. 그런데 이런 모습은 그의 스튜디어에서 한참을 처박혀 그림그리고 난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다. 외향과 내성을 수시로 번갈아갔다.
그는 또 반항적이면서 또 보수적이었다. 보수적으로 유화재료로 잘 짜여진 캔버스에 그리다가도 또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완전히 틀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캔버스의 이상한 구석에 차고 깡통뚜껑과 걸레를 붓삼아. 그리는 대상도 쇼킹하고 말도안되는 것들이었고.
Bacon의 그림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모순을 반영했다. 야만스럽게 크게 상처난 인간의 살을 그리면서 세심함이 드러나고. 애써서 세밀하게 그린 부분에 거칠게 물감을 던져 튀게하고. 이런 대비가 긴장과 흥분을 만든다. 그의 그림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런 모순들이다, 그의 마음에 있던 그리고 그림에 투영되는.
다른 사람들에겐 으아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모순은 창의성과 땔래야 땔 수 없는 요소다.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하라고 강요한다. 결정하고 그것을 유지하라고. 결과는? 생각이 고착된다. 조직도 마찬가지. 창의적인 마음은 모순되는 관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스스로에 모순이라고 느끼는가? 가능성들로 끓어오르고 있다는 징조다.
/지평선 너머를 보라/look over the horizon/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에만 사로잡혀서 먼 앞을 보지 못한다. Ted Turner (CNN창업주) 이야기.
왜 Ted Turner를 멀리보는 사업가(visionary entrepreneur)라고 할까? 1970년대에 그는 9am-5pm 일하는 시간은 끝날거라고 보았다. 일하는 시간이 훨씬 유동적이게될 것이라고 봤다. 이 비전에서 보니 당시의TV스케쥴이 맞지않았다. TV 방송국들은 뉴스를 오후 6시하고 저녁 10시에 편성했다. Turner의 아이디어는 24시간 뉴스. CNN이 전세계 뉴스를 펼쳐지는 그대로 실시간으로 24시간 커버하기로. 잘 준비하고 스무스하게 전달되는 주요 방송사 뉴스와는 다르게, CNN은 라이브로 생으로 사건을 즉각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폴란드의 노동운동, 중국의 천안문사태, 1991년 걸프전 모두 실시간으로. 리포터는 현장에서 대본없이 숨죽이며 사건을 중계했다. CNN은 전세계에게 가장 널리 배급되는 뉴스 채널이 되었다.
1963년 아버지가 자살하고 Turner는 작은 광고판 가업을 이어받아서 파산에서 구해내고 확 바꿨다. 광고판 사업, 레스토랑 사업, tv, 프로 스포츠 손 대는 것 마다, 미래를 보고 현재로 적용해서 수백만불 사업으로 성공시키고, 수십억불을 자선사업에 쓰고.
Keith Haring 은 멀리보는 예술가였다. 미래를 본 시각은, 즉각 인식되는 시각 언어였다. 1980년대에 School of Visual Arts in New York에서 공부하고, 선이 흐르는 화법을 개발하고. 특이한 스타일은 두꺼운 그래픽 아이콘(심장, 손, 빛나는 몸통등)을 추상적인 패턴과 합쳐서 풍부하게 밀집한 모양을 만들어 냈다.
Haring은 다음번 예술사조를 찾았다. 뉴욕에서는 다운타운 갤러리에서 늘 시작했다. 그는 Tony Shafrazi Gallery에서 알바를 하면서 최신 경향의 속사정을 파악하게 되었다. 다운타운 겔러리들이 뉴욕 길거리와 지하철에 피어나던 그라피티낙서들을 전시하기 시작하는 걸 보게되고. 그런데 그라피티들은 판에 박은 모습이었다. 유치하고 글자가지고 이런 저런 색깔로 칠하면서. 모두 같은 스타일이었다. 여기서 Haring은 자기의 기회를 포착한다. 그른 이런 트렌드에 맞추면서 자신만의 굵은 검은 라인과 심볼같은 이미지로 독특하게. Tony Shafrazi Gallery에서 단독 전시를 하게되고 곧이어 미술사의 한페이지로 진입한다.
비젼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의 분야에서 나오는 다음 것이 뭐가 될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고 남들보다 먼저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일거리에 너무 급급하고, 그래서 고개를 들고 지평선너머를 보지못하지만.
/스스로를 푹 담가라/immerse yourself/
영화감독을 현장에서 보면 그보다 더 스트레스쌓이는 직업을 상상하기 어렵다.
끊임없이 묻는 스태프와 배우들. "어떻게 조명을 댈까요?" "이걸 어떻게 대사할까요?" "클로즈업으로할까요 길게 잡을까요?" 모두에게 정확이 지시내려야한다. 늘 주어진 예산안에서 될 수 있도록. 매일 아침 7시에 시작해서 20시간을 완전한 대혼돈의 셋트장에서. 그리고 영화가 망하면 다시는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없을거라는 압박도 있다.
Peter Bogdanovich감독은 이런 걸 모두 잘 소화해낸다. 모든 질문에 즉각 현장에서 답할 수 있는 백과사전같은 영화지식을 바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어장에 중요한 영화 자료를 모아놨었다. 12살에서 30살 까지 5316장이나 되는 그런 단어장을 모았다. 그가 본 모든 영화에 대한 모든 자료들, 자신의 평가와 함께. 일주일에 6-8편 영화를 봤다.
그가 MoMa에서 영화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직장을 얻고 Esquire잡지에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직장을 얻었다. 감독들을 인터뷰할 때 그 감독들의 영화에 대한 상세한 지식으로 감독들을 감동시켰다. 영화마다 모든 조력자들, 각각의 장면마다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였는 지 등. 그러면서 당대 최고의 감독들과 친구가 되고. 한번은 할리우드 유명인이 그의 Esquire잡지 글에 감동받고 다음번 영화의 조감독 자리를 제안했고, 영화감독으로 커리어가 시작된다.
그의 The Last Picture Show는 1971년 8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다. 이 영화가 처음이다. 영화를 위한 주제곡을 사용한. 현재는 당연한 것이 된. 그런데 그 영화처럼 정교하게 이용된 것은 아직 없다.
관심갖는 것에 덕후가 되라. 모든걸 알아내면 그것에 대해서 아는거다. 금융이건, 과학이건, 교육이건, 전혀다른 거건, 관련된 모든 책을 읽고 모든 잡지를 섭렵해라. 모든 강의에 가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탐구해라. 위기가 닥칠때 담글 수 있는 지식의 풀을 가지게된다.
/다른것과 교배시켜라/cross-pollinate/
우리 대부분은 Alexander Flemming 덕분에 살아있다. 페니실린.
플래밍이 다른 과학자들과 달랐던 점은 예술가같이 생각했다는 점. 그는 잘못된 실험에 더 관심을 가졌다. 잘된 실험보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을 따른게 아니고 이상하고 다른 방식을 쫒았다. 그는 과학자들의 방식보다는 예술가들의 방식을 선호했다.
1928년 9월 버려진 박테리아를 죽이는 곰팡이를 발견한다. 그는 그 곰팡이의 색깔과 패턴에 매료되었다. 이게 페니실린의 항생효과를 발견하게되는 계기. 의료의 세계를 영원히 바꿔놓는. 다른 많은 과학자들은 실험접시에서 자라는 페니실린을 봤지만 실수로 생각하고 내다 버렸다.
플래밍은 열광적인 수채화 동호인이었다. 그는 Chelsea Arts Club에서 동호인들과 어울리는 걸 더 좋아했다. 동료 과학자들과 어울리는 것 보다. 그리고 색다른 재료로 그렸다. 그가 원하는 살아있는 색깔을 내는 박테리아를 특별하게 배양해서 그걸로.
플래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했을 때 그가 진짜 찾고있던 것은 수채화 그릴때 사용할 뭔가 희귀한 재료. 플래밍은 평생 그런 특이한 재료(물감)을 늘 찾았다.
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은 예술에 심취했다. 아인스타인은 바이올린에. 다윈은 Shelley에. 닐스 보아는 세익스피어에. 문화에 널리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전공을 풍부하게.
혁신적인 회사들 다른것과 교배를 북돋는다. Oticon(덴마크 보청기회사)은 다른 층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계단에서 종종 즉각미팅을 하는 것을 보고, 계단을 넓혀주고. Nokia는 점심을 꼭 식당에 모여서 먹도록 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새로운 답이 나온다.